영화 언어의 정원 줄거리 스토리 리뷰를 진행해 보려고 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으로 한여름, 무언가를 앓고 있었는지도 모를 두 사람. 스스로도 병인지 모를 정도로 뜨겁고 깊게, 사랑인지 그리움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을 향한 초조와 원망이었을지도 모르는 영화였다.
하늘도 구름이 끼어서 비 온다면
비 오는 날이 유난히 좋다는 남학생. 출근길 번잡한 신주쿠역을 지나며 그가 찾은 곳은 한 공원이다. 빗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리는 그곳에서 남학생의 발길이 멈춘 곳은 한 정자. 이미 그곳엔 누군가가 먼저 와 있는 상태였다. 여유롭게 낮술까지 즐기고 있는 여성을 앞에 두고 남학생은 나란히 앉아 뭔가를 그리고 시작한다. 힐끔 쳐다보는 여성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지만 도무지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은 남학생의 교복을 보고는 뭔가를 느끼게 되고, 유심히 그를 쳐다보는 여성은 묘한 시구를 던진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어의 정원'이라는 제목과 어울리게 그녀만의 언어로 말이다. "천둥소리 희미하게 울리고 하늘도 구름이 끼어서 비 온다면 당신 있어줄까." 남학생의 이름은 아키즈키 타카오. 어머니, 형과 함께 살지만 혼자서도 살림을 능숙하게 해내는 꿋꿋한 학생이다. 구두 장인을 꿈꾸는 타카오는 비 오는 날에는 오전 수업을 빼먹는 걸 일종의 생활 패턴으로 삼은 학업에 성실하지도 그렇다고 불량스럽지도 않은 약간은 특이한 친구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여름날의 아침 치고는 어두운 바깥을 보곤 비를 직감 한 그는 혹 공원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한다. 아니나 다를까 힘차게 달려온 공원 정자엔 이번에도 그녀가 먼저 와 있었다. 특이하게 초콜릿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는 그녀. 오전 수업을 땡땡이친 타카오마저 그녀의 회사 생활을 걱정할 정도로 그녀 역시 묘한 특이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로 시작되는 장마. 비가 계속될수록 타카오와 여인이 만나는 날은 많아진다. 구두 장인이 되고 싶다는 장래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타카오는 그녀에게만은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이상하게나마 쉽사리 털어놓을 수 있었다. 밤에 잠드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서 이제 타카오는 비를 반기는 사람이 아닌 비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마치 세상의 모든 비밀을 감싸고 있는 듯 신비로운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말이다.
여름장마는 거짓말처럼 끝이 난다
비가 오는 날, 공원의 정원을 찾기 시작하던 여성의 이름은 유키노 유카리. 유키노 역시 타카오에게 마음이 조금씩 끌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녀에게도 비 오는 날에 공원 정자, 아니 정확히는 타카오와 함께 있는 공원의 정자는 한없는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유키노가 안주 삼아 먹던 초콜릿과 낮술은 사실 극심한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해 맥주와 초콜릿 맛밖에 느끼지 못하는 그녀만의 생존 자구책이었다. 복잡하게 얽힌 직장 내 사정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유키노는 그래서 더더욱 한가로운 무단결근에도 별 초조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젠 과거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했지만 전 연인조차도 직장 내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에 유키노를 끝내 믿어주지 않았다. 마음으로도 기댈 곳이 없었던 유키노에게 퇴직수속은 어찌 보면 유일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그런 그녀에게 우연히 다가온 비 오는 날의 만남은 퇴직을 앞두고 그녀가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삶의 해방구였다. 여름장마의 빗소리가 더욱 짙어지던 7월. 유키노는 책 한 권을 들고 집을 나선다. 이전 도시락을 뺏어 먹었다는 것을 핑계 삼아 타카오에게 주려고 한 깜짝 선물이었다. 타카오가 가지고 싶어 했던 수제구두에 관한 책이었다. 깜짝 선물에 타카오는 기뻐한다. 아니 어쩌면 책 보다도 살뜰한 그녀의 마음이 더욱 반가웠을지도 모르겠다. 한층 상기된 표정으로 급히 책장을 훑어보는 타카오를 바라보며 유키노는 웃음 짓고 있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던 타카오는 뭔가를 결심한 듯 무겁게 말을 건넨다. 지금 구두를 하나 만들고 있고 아직 누구를 줄지 정하진 않았지만 여자구두라며 말을 흐리고 끝내 어떤 말이 전해졌는지 모르지만 유키노는 신고 있던 구두를 벗는다. 그리고 타카오를 향해 발을 뻗는다. 여름 땅의 빗물이 스며들 듯 타카오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가락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분명 자의 눈금이, 노트의 연필이 그녀의 발을 재고 있는 듯했지만 사실 타카오는 마음으로 그녀의 발을 재고 있었다. 두근거림과 설렘 속에서 말이다. 유키노 역시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 말이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됐어." 타카오에게 처음이지만 솔직한 자신의 처지를 겨우 말해 낼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말을 들으며 타카오는 더욱 강하게 그녀에 대한 끌림을 느낀다. 둘의 강렬한 마음이 먹구름을 말릴 강한 열기가 됐던 걸까? 그날 이후, 여름장마는 거짓말처럼 끝이 난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더 이상 도쿄의 여름하늘은 비로 얼룩지지 않았다. 타카오와 유키노 모두 서로를 보지 못하는 초조감에 휩싸이지만 어느새 그들에겐 '비'가 곧 만남의 약속이 되어버렸기에 비 없이는 서로를 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맑은 날, 공원 정자에서 타카오를 기다리던 유키노도 인기척이 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비가 없이는 타카오도 없다는 걸 말이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타카오는 비록 그녀를 만나지 못해도 더욱 성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녀를 다시 걷게 해 줄 구두를 만들기로 다짐한다. 그렇게 날씨로 엇갈린 그들의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가며 곧 방학이 끝에 다다른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등교한 타카오는 친구들과 복도를 지나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를 부르는 친구의 말에 당황한다. "유키노 선생님!" 타카오가 장난 삼아 걱정의 말을 건넸던 유키노의 직업은 바로 선생님이었다. 그것도 타카오가 다니는 학교의 문학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왠지 모르게 처음 만남치고는 낯이 익었던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타카오 반 수업을 맡지 않았기에 여간 관심을 쓰지 않고는 자신의 학교 선생님이라는 걸 알 수 없었던 타카오. 그에 비해 사실 유키노는 타카오의 교복과 배지를 보곤 금세 그가 자기 학교 학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타카오는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유키노가 상급생과의 트러블로 학교를 그만두게 됐음을 알게 된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오늘이 유키노에겐 퇴사 처리를 위해 학교를 찾은 마지막 날이었던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이지만, 이대로 있을 수 없던 타카오는 유키노의 퇴직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던 상급생들에게 찾아간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을 상대에게 뺨을 때리고 만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배들의 응징. 힘의 차이도 있었지만 타카오는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게 내리는 일종의 벌인 셈이었다. 상처 투성이의 얼굴로 타카오가 찾은 곳은 공원의 정자였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분명 그곳엔 유키노가 있을 것이라 타카오는 알고 있었다. 다친 상처가 애처로운 듯 타카오의 얼굴을 걱정스레 보는 유키노. 타카오는 예전 그녀가 자신에게 건넨 시의 답을 해준다. 그의 마음을 담은 언어로 말이다. "천둥소리 희미하게 울리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나 여기 있겠어. 당신이 붙잡아 준다면."
구두 없이 혼자서 걷겠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이 긴 말을 건네기도 전에 그들의 시에서 자아낸 듯 갑작스레 어두워진 하늘이 비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토해내지 못했기에 더욱더 맹렬히 퍼붓는 비는 온공원을 적신다. 이미 한껏 젖은 두 사람은 축축해진 옷이 마냥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어느새 타카오는 유키노의 집에 와있었다.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다림질을 하는 그녀의 손도,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도마를 내려치는 그의 손도 포근한 유키노의 방 안에 이미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었다. 밥을 먹으며 서로를 향해 웃는 그들은, 커피를 마시며 서로를 향해 웃어줄 수 있는 그들은 지금 이 순간 동시에 행복을 느낀다. 풍겨오는 커피 향과 함께 바람을 따라 흐르는 비 냄새를 한껏 느끼며 타카오는 어떤 고양감에 취해 그녀를 선생님이 아닌 유키노 씨로 부릅니다. 과감한 그의 말에 유키노 역시 흠칫 놀란다. 타카오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고. 유키노의 뺨이 붉게 물들지만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돌린다. 선생과 제자 어른과 아이라는 사회의 공식이 넘기 어려운 틀임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감히 함부로 타카오의 마음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키노는 타카오에게 자신이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두 없이 혼자서 걷겠다 말한다. 타카오의 고백에 대한 유키노의 답이었다.
비가 알려준 진심
어리지만, 자신의 고백을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거부한 유키노의 말을 타카오는 모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타카오는 채 마르지 않은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유키노의 집을 떠난다. 남겨진 유키노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울음, 그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흐르는 눈물과 함께 흐르는 추억, 타카오와의 추억 그리고 타카오가 건넨 말들. 유키노는 그제야 뭔가를 알게 된다. 자신이 지켜야 할 건 선생이라는 위치가 아니라 비가 알려준 진심이란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가져야 할 것은 어른이라는 지위가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 줄 구두라는 것을. 문을 박차고 나선 유키노는 타카오를 붙잡기 위해 계단을 내려온다. 빗물에 미끄러운 계단이지만 몇 번을 넘어진다 해도 괜찮았다. 그를 잡을 수 있다면. 계단 난간에 기대 바깥을 내다보는 타카오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에 닿자 그녀는 걸음을 멈춘다. 타카오 역시 유키노의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본다. 타카오는 악을 쓰듯 유키노를 향해 서운함을 토해낸다. 하지만 겉으로만 원망을 덮고 있을 뿐 울먹이는 그의 표정은 유키노에게 어서 진심을 말해달라 애원하고 있었다. 유키노 역시 타카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매일 아침 두려움을 느끼며 학교로 향해야만 했던 자신을 그런 자신을 일으켜 세워줬던 것이 타카오였음을. 오열 속에 타카오를 힘껏 껴안은 유키노가 비로소 외쳤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사람. 희미해지는 빗줄기 뒤로 햇살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의 계절은 그렇게 쏜살같이 끝이 났다. 타카오의 안부를 묻는 유키노의 편지. 그리고 타카오가 만든 유키노의 구두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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